여행일: 2014. 3. 15.

위   치: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할 때 방문할 예정인 천주교 성지 두 곳 중 나머지 한 곳인 '해미성지'를 다녀왔습니다.

 

 

 

'해미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곳이라고 합니다.

 

 

 

속칭 '해뫼'라고 불리던 해미 고을은 조선 초기에 병마 절도사의 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반 영장이 현감을 겸해 지역을 통치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내포(충남 서북부 지역인 홍성, 서산, 태안, 예산, 당진 전 지역과 아산, 보령의 일부 등의 지역을 아울러 가리킴) 일원의 해안 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790년에서 1890년에 이르는 100여 년의 기간 동안 해미 진영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처형했다고 합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이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할 때 뿐만 아니라 해미 진영은 끊임없이 내포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들여 죽였다고 합니다.

 

 

 

이 박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 있었던 두 채의 큰 감옥은 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 나와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어 갔다고 합니다. 또한 더욱 잔인하게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 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꿈틀거리는 사람을 발견하면 횃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교 신자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돌다리가 팔 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행해졌던 곳입니다.

 

 

 

 

 

이 돌다리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고통에 신음하며 죽어갔을 것 같습니다.

 

 

 

진둠벙(생매장 터)

 

 

 

이 둠벙은 팔이 묶인 천주교 신자들을 거꾸로 떨어뜨려 죽인 곳이라고 하는군요.

 

 

 

한 명씩 처형하는 것에 지친 관헌들은, 특히 1866년 병인년에서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때에는 사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수십 명씩 끌고 가 아무 데나 땅을 파고 구덩이에 산 채로 집어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 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스러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70여 명만이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그나마도 불확실하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 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숨져 간 유적지는 현재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천주교 신자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는 생매장 터인 진둠벙이, 14처 노천 성당으로 단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갇혀 있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습니다. 관원들은 순교자들의 머리채를 호야나무 위에 매달은 후 고문을 가하였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의 뼈와 치아

 

 

 

 

 

 

 

어떤 남성 분이 성당에 앉아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로부터 약 500여m 떨어진 곳에 해미읍성이 있습니다. 해미읍성은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사용하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습니다. 호야나무 위에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것입니다.

 

 

 

해미읍성은 이순신 장군께서 군관 때 근무했던 곳이라도 합니다.

 

 

 

 

 

 

 

 

 

호야나무를 찾아 걷고 있습니다.

 

 

 

호야나무

 

 

 

이 나무에 살아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매달아 놓고 고문을 가했다고 하는군요.

 

 

 

 

 

천주교 신자들을 가두어 놓았던 옥사를 복원해 놓은 것입니다.

 

 

 

 

 

 

 

해미읍성에 온 김에 성 내부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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