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2016. 12. 17.

위   치: 충남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대하여 ]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세종 29년(1447년) 4월 20일 꿈속에서 도원(桃源)의 세계를 여행하고 거기서 본 것을 안견에게 설명해 주어 3일 만에 완성된 그림인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조선 최고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의 천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안견기념관 홍보 자료 내용 인용)

 

[ 안견에 대하여 ]

 

안견은 자(字)를 가도(可度), 득수(得守)라 하고 호(號)를 현동자(玄洞子) 또는 주경(朱耕)이라 하였으며, 정확한 생졸년(生卒年)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록에 의하면 세종 연간(1419~1450)에 가장 활발히 활동하였고, 성종 년간(1469~1494) 초기까지도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경은 몽유도원도를 그릴 당시 이미 정4품의 호군(護軍) 벼슬을 하였는데 화원(畵員) 신분으로 정4품까지 올라간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경우로서 조선 건국 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그는 산수화에 가장 특출하였으며, 그 밖에도 초상(肖像), 화훼(花卉), 매죽(梅竹), 노안(蘆雁), 누각(樓閣) 등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그러나 기록과는 달리 실제로 남아 있는 작품은 '몽유도원도' 밖에 없다. (안견기념관 홍보 자료 내용 인용) 

 

 

안견기념관은 조선시대 산수화의 대가인 안견 선생의 예술혼을 기리고 위하여 선생의 출생지인 서산시 지곡면에 건립되었으며, 이곳에는 선생의 세계적인 걸작품인 몽유도원도 영인본(모사품) 등 18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안견기념관의 저 현판의 글씨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안견이 '서산시 지곡면' 사람이라는 근거 사료들입니다. 

 

몽유도원도 원본은 일본이 가지고 있어서 직접 볼 기회가 없지만, 원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영인본을 통하여 몽유도원도의 예술성을 감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첫머리에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라고 제첨(題簽)을 달았다고 합니다. 즉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목 왼쪽 바로 옆에는 안평대군의 칠언절구 시(詩)가 주서(朱書)로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안평대군의 칠언절구 시를 풀이한 것입니다. 

 

이것이 몽유도원도입니다. 안평대군의 칠언절구에 이어서 몽유도원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몽유도원도는 두루마리 비단에 담채로 그려졌으며 규격은 38.7×106.5㎝입니다.

 

무릉도원도에 이어서 안평대군이 작성한 발문(跋文)이 있습니다.

 

안평대군의 발문(跋文)을 풀어 놓은 것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몽유도원도에는 신숙주, 이개, 박평년, 정인지, 서거정, 성삼문 등 21명의 당대 고사(高士)들의 시(詩)가 각기 자필로 적혀 있어서 시(詩), 서(書), 화(畵)의 삼절(三絶)을 이룰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념비적인 성적을 띤다고 합니다.

 

이 시는 이개(李塏) 선생의 시입니다. 이개 선생은 목은 이색 선생의 증손자입니다.

 

이 시는 신숙주(申叔舟) 선생의 시입니다. 

 

이 시는 김담(金淡) 선생의 시입니다.

 

이 시는 송처관(宋處寬) 선생의 시입니다.

 

이 시는 하연(河演) 선생의 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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