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2013. 9. 8.
위 치: 충남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는 심훈 선생이 1932년 서울에서 당진 부곡리로 내려와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34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으로 '필경사(筆耕舍)'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필경'은 심훈 선생의 1930년 7월 작품으로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갈아 엎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자신의 집을 필경사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선생은 민족 의식과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지닌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이곳에서 1935년 농촌 계몽 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상록수'를 집필하였다고 합니다.(필경사 안내문 내용 인용)
필경사 내부
심훈 선생의 묘
묘는 필경사 바로 옆에 있습니다.
상록수문화관
상록수문화관 내부
이 책상은 심훈 선생이 낙향하여 집필할 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상록수, 직녀성, 영원의 미소 등 다수의 작품을 이 책상에서 창작하였다고 합니다.
심훈 선생의 본명은 '대섭'이라고 합니다.
심훈 선생이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던 서대문형무소에서 어머니께 드린 편지로서, 발표된 심훈 선생의 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1924년 8월 28일부터 73회에 걸쳐 심훈 선생이 후반부를 번역하여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던 '미인의 한' 번역 원고본
만가(晩歌, 죽은 이를 애도(哀悼)하는 시가(詩歌))
심훈 선생이 원작, 각색, 감독하여 1927년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던 영화 '먼동이 틀 때' 시나리오 원고
심훈 선생이 1933년 4월에 큰 아들 심재권의 돌을 기념하여 아들에게 쓴 글
이것은 '그 날이 오면' 검열본입니다. 1932년 일제가 '그 날이 오면'의 내용을 검열한 교정본으로, 삭제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넒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 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구러저도 눈을 감겠소이다.
『상록수』는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심훈 선생의 큰 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선생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소설 '상록수' 친필 원고본과 교정본
1935년 6월 26일 탈고한 심훈 선생의 대표작 소설 '상록수'의 친필 원고본
1936년 소설 '상록수'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위한 교정본. 심훈 선생은 이 소설을 교정보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신문에 연재된 소설 '상록수'
심훈 문집
심훈 선생의 묘는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에 있었는데, 2007. 12.에 필경사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실은 신문 호외 뒷면에 적은 심훈 선생의 유작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