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2011. 10. 02
위 치: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고택 소개]
추사고택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태어난 집이다. 원래는 서울 장동에 있었으나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 현재의 위치인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오석산 선영 아래에 건립했다. 크기는 80.5평이며 안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두 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 협방, 광 등을 갖춘 'ㅁ'자형 가옥이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정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대청은 그리 흔하지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대갓집」형이다.
추사고택 원경
추사고택을 구경하기에 앞서서 고택 왼쪽에 있는 김정희 선생의 묘소를 구경하였습니다.
비석에 '완당 선생 경주 김 공 휘 정희 묘'라고 되어 있네요. 완당은 김정희 선생의 호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휘(諱)'자는 별세한 사람 이름 앞에 붙이는 말입니다.
묘소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묘소 앞에 있는 노송
김정희 선생 묘소에서 바라본 고택
이제 고택으로 가 보겠습니다.
솟을대문
안채(좌)와 사랑채(우)
사랑채
사랑채 댓돌 앞에 석주가 보이시죠? 저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김정희 선생이 직접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해시계
사랑채 문 위에 걸려 있는 국보 제180호(모조품)
다음은 안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6칸 대청
이제 사당인 추사영당으로 이동합니다.
추사영당에 김정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김정희 선생 영정
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 홍문은 김정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가 내린 열녀문입니다. 화순옹주는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하자 그 때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문 때문에 열녀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려문을 내렸다고 합니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합니다.
열려문임을 보여주는 현액
화순옹주 홍문 내부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 합장묘
이 비문에는 화순옹주의 아버지인 영조의 어필이 있습니다.
비문 상단에 어필(御筆)이라고 되어 있지요?
천연기념물 제106호 "예산 백송"과 그 뒤로 김정희 선생의 고조부인 영의정 김흥경의 묘소
백송은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로써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우리나라에 몇 그루 밖에 없는 희귀한 수종이라고 합니다. 이 백송은 김정희 선생이 25세 때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연경(지금의 북경)에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씨를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 밑에서부터 세 가지로 갈린 모양이었는데, 두 가지는 고사하였고 현재는 한 가지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수령은 약 200년이며 높이는 약 10미터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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