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2014. 2. 23.
위 치: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김일엽(金一葉, 1896~1971)은 일제 강점기의 여성운동가, 언론인, 시인이자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며 시인 겸 수필가이다. 정조는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있다는 '신정조론'을 주장하였고, 순결의 무의미함을 주장했다. 일본 유학 중에 만난 친구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여성작가 히구치 이치요(桶口一葉)의 이름에서 따와 지어준 필명을 따서 '일엽'이라는 필명을 썼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배려로 삼숭보통고등학교를 마쳤다. 그 뒤 1913년 이화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1918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 도쿄의 닛신여학교(日新女學敎)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시기부터 화가 나혜석 등과 함께 자유 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외치며 개화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다. 일본 유학 중 문인으로 데뷔하여 시와 소설, 칼럼 등을 발표하였으며, 귀국 후 1920년에는 폐허 지의 동인으로 참여하고, 1920년에는 신여성지를 직접 창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일본 유학 중 임노월, 오오타 세이죠 등과 자유 연애를 하였다. 언론 활동으로는 1921년과 1931년 매일신보의 기자로 있었고, 동아일보의 기자로도 있었으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문단, 매일신보 등에 칼럼과 논설을 기고하였고, 1925년부터 3년간 아현보통학교의 교사로도 근무하였다.
나혜석, 김명순 등과 함께 여성의 성 해방론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고, 여성의 의식 계몽을 주장하는 글과 강연, 자유 연애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에 두 번 실패하였으며, 사회의 편견에 시달리다가 1933년 출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이후 만공 선사의 권고로 문필 활동을 중단하다가 1960년대 '청춘을 불사르고' 등과 수필집들을 발표하였으며, 불교 사회 운동을 하였다. 일엽은 본래 필명이었다가 승려가 된 후 법명으로도 사용하였다. 불명(佛名)은 하엽(荷葉), 도호(道號)는 백련도엽(白蓮道葉), 하엽당(荷葉堂),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다른 이름은 원주(源珠)이다. (위키백과 인용)
나혜석(羅蕙錫, 1896 ~ 1948)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아명(兒名)은 나아지(羅兒只), 나명순(羅明順)이며, 아호는 정월(晶月)이다. 일본 도쿄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1918년 귀국하여 화가,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으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후 1918년 12월부터 박인덕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 1919년 3·1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20년 김우영과 결혼, 그를 따라 만주와 프랑스 등을 여행하였으며 그림, 조각, 언론, 문필, 시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유럽과 미국 시찰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야수파, 인상주의, 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한때 여러 남성들과의 연애로 문제가 되었으나 곧 그림활동에 매진하던 중, 외교관 최린과의 염문으로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뒤에 최린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된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발표, 순결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였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고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하는 것에 대한 비판,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유명한 신여성으로, 뛰어난 미모와 함께 그림, 글, 시 등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근대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하였다. 박인덕, 김일엽, 허정숙 등과 함께 이혼 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문재(文才)도 뛰어났으며, 일본 유학 때부터 여권 신장의 글을 발표한 여권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연기자 나문희(본명 나경자)의 고모 할머니이기도 하다.(위키백과 인용)
이응로(李應魯, 1904 ~ 1989)는 충남 홍성 출생이며, 충남 예산에서 성장하였다. 1923년 경성부에서 당시 유명한 서예가이자 서화가였던 김규진(金圭鎭)의 문하생이 되어 서예·사군자·묵화 등을 교습하였다. 이듬해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묵죽 墨竹〉을 출품하여 입선하였으며, 그 후 일본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35년 다시 일본으로 가서 본향회화연구소에서 일본 남화의 대가였던 마쓰바야시 게이게쓰(松林桂月)에게 사사했으며, 서양화 기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1938년 제17회 선전에서는 이왕직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1945년까지 선전과 일본 화원전에서 입선과 특선 또는 무감사로 계속 출품했다. 1946년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을 조직하여 일본 잔재의 청산과 민족적인 한국화를 주창했으며, 조선미술가협회의 상임위원이 되었으며, 1948년 홍익대학교 주임교수로 있었다.
그 후 1962년 프랑스 파리 파케티 화랑에서 콜라주전을 열었으며, 1965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차지해 주목받았다. 1967년에는 한국 전쟁 때 헤어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동독의 동베를린에 갔다가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프랑스 정부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 일로 인해 국내 화단과는 단절된 한편 스위스와 프랑스에 이어 일본·미국·벨기에를 중심으로 수십 차례의 초대전에 출품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75년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1977년 문헌화랑에서 신작 〈무화 舞畵〉로 개인전을 열었으나 또다시 뜻하지 않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와는 완전 단절되었다. 처 박인경은 1977년 7월 31일 취리히에서 북한에 의해 발생한 백건우와 윤정희 부부 납치미수 사건에 관련되었다. 1983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이후 1985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마지막 개인전을 가졌으며,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하였다.(위키백과 인용)
수덕사 입구에 '수덕여관'이 있습니다. 수덕여관은 고암 이응로 화백의 옛집인데,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나혜석 선생이 3년간 머문 적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혜석 선생은 탤런트 나문희 님의 고모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당시 나혜석은 출가를 결심하고 친구인 김일엽(본명 김원주) 스님을 만나러 수덕사에 왔다가 수덕여관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혜석과 김일엽은 일제 강점기 때 자유연애론, 신정조론을 주장했던 신여성들이라고 합니다.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고, 김일엽 스님은 시인, 작가, 승려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혜석과 김일엽에 대하여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나혜석과 김일엽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보세요. 두 사람의 생애를 들여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시대를 앞서가던 분들, 그래서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분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평가는 각자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약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수덕여관은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후 수덕사에서 이 여관을 매수하여 정비한 다음 이응로 화백의 사적지로 관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응로 화백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서 아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의 옛집이란 사실과 함께 나혜석이 머물던 곳이란 사실도 함께 알았으면 좋겠네요.
이응로 화백의 작품인 암각화
김일엽 스님의 자취를 찾으러 '환희대'로 가고 있습니다. '일엽'은 춘원 이광수 선생이 지어준 필명(筆名)이라고 합니다. 당시 김일엽과 이광수는 애인관계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을 잘못 찍는 바람에 내용이 전부 나오지 않았네요.ㅎ
환희대
대웅전(국보 제49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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